이 약어가 분류 체계에 들어온 것은 최근이지만, 그것이 가리키는 경험은 새롭지 않습니다. 복합 PTSD(CPTSD)는 트라우마가 하나의 사건이 아니라 하나의 기후였을 때, 즉 빠져나오기 어려운 상황이 반복되거나 오래 이어졌을 때 남는 것을 가리킵니다.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의 증상에 세 가지 지속적인 어려움이 더해집니다. 정서의 조절, 자기 이미지, 그리고 타인과의 연결입니다. 이 범주를 정의하는 것은 짐작된 심각도가 아니라 바로 이 세 가지 차원입니다.
ICD-11이 복합 PTSD라고 부르는 것
복합 PTSD는 세계보건기구의 분류인 ICD-11이 채택한 진단으로, PTSD와 나란히 놓이면서도 그것과 구별됩니다.
이 분류에서 PTSD는 세 가지 묶음에 근거합니다. 현재 시제로 다시 겪는 재경험(침습적 기억, 악몽, 그 장면이 다시 시작되는 듯한 느낌), 사건을 떠올리게 하는 것에 대한 회피, 그리고 과각성과 놀람 반응으로 나타나는 지속적인 위협감입니다. 복합 PTSD는 이 세 묶음을 그대로 가져오고, 여기에 자기조직화의 장해라고 불리는 세 가지를 더합니다.
알아 둘 만한 비대칭이 하나 있습니다. 미국의 분류인 DSM-5는 복합 PTSD를 별도의 진단으로 채택하지 않았고, 대신 해리성 아형을 동반한 PTSD를 기술합니다. 따라서 나라와 임상가의 훈련 배경에 따라 같은 임상 양상이 서로 다른 이름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견은 경계를 어디에 그을 것인가에 있지, 실제로 겪는 현실에 있지 않습니다.
더해지는 세 가지 차원
- 정서 조절의 어려움. 감정이 빠르게 올라오고 천천히 가라앉거나, 그 반대로 무뎌지고 자기 자신과 거리가 생긴 듯한 느낌이 듭니다. 같은 사람에게서 두 가지 양상이 번갈아 나타날 수 있습니다.
- 지속적으로 부정적인 자기 이미지. 자신이 모자라고, 잘못했고, 되돌릴 수 없다는 느낌이 이어집니다. 잠시 지나가는 자신감의 저하가 아니라, 바깥의 반증에도 흔들리지 않는 안정된 확신입니다.
- 대인관계의 어려움. 가깝게 느끼기, 신뢰하기, 연결을 유지하기가 어렵습니다. 관계를 늘리기보다는 관계를 피하거나 그 안에서 물러나는 쪽으로 기우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세 가지 차원은 성격 특성이 아닙니다. 그것이 보호가 되던 자리에서 학습된 것이고, 더 이상 아무것도 보호하지 않게 된 뒤에도 남아 있습니다.
‘복합’이라는 말이 뜻하지 않는 것
CPTSD는 대체로 반복되었거나 오래 이어진 트라우마 뒤에 옵니다. 아동기의 폭력이나 방임, 관계 안에서의 폭력, 착취, 감금, 박해, 무력 분쟁 같은 것들입니다. 공통점은 사건의 성격이 아니라 그 반복, 그리고 거기서 벗어날 수 없다는 점입니다. 성인기에 시작되는 것도 가능합니다.
복합이라는 말은 심각도가 아니라 형태를 가리킵니다. 이른바 단순 PTSD가 일상에서 복합 PTSD보다 더 큰 지장을 줄 수도 있으며, ‘복합’을 ‘더 심한’으로 알아듣는 것이 가장 흔한 오해입니다.
한 가지 더 짚어 둘 점이 있습니다. 오래 이어진 트라우마를 겪었다고 해서 자동으로 복합 PTSD가 되는 것은 아니며, 그런 일에 노출된 많은 사람은 이 양상을 보이지 않습니다. 반대로, 인터넷에서 읽은 목록에서 자신을 알아보는 일이 평가를 대신하지는 못합니다. 멀리서 보면 비슷해 보이는 어려움을 만드는 다른 상태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경계선 성격장애와의 혼동
가장 흔한 혼동입니다. 두 임상 양상은 정서 조절의 어려움, 힘든 대인관계, 손상된 자기 이미지를 함께 가지고 있고, 경계선 성격장애에서는 트라우마 병력이 자주 확인됩니다. 겹치는 부분은 실제로 있지만, 부분적입니다.
문헌이 구별점으로 기술하는 것은 이렇습니다. CPTSD에서 자기 이미지는 부정적이면서 안정적인 반면, 경계선 성격장애에서는 오히려 불안정하고 요동칩니다. 관계의 면에서 CPTSD는 회피와 철수 쪽으로 기울지만, 경계선 성격장애는 버림받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강렬하고 변화무쌍한 관계를 중심으로 조직되며, 그 안에서 충동성이 더 중심적인 자리를 차지합니다. 두 진단은 함께 있을 수 있고, 이 둘이 서로 다른 두 현실을 기술하는지 여부는 여전히 활발히 논쟁 중입니다.
이 혼동에는 대가가 따릅니다. 끈질긴 편견을 함께 끌고 오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이 ‘사람을 조종한다’거나, 사랑하기에는 너무 망가졌다거나, 여기서는 회복할 수 없다는 생각입니다. 이 말들 가운데 어느 것도 진단을 기술하지 않습니다. 그것들이 기술하는 것은 평판입니다.
평가와 치료
평가는 심리적 외상 임상 훈련을 받은 전문가의 몫입니다. 질문지도 있고 그중에는 ICD-11에 맞추어 만들어진 International Trauma Questionnaire도 있지만, 이들은 면담의 방향을 잡아 줄 뿐 면담을 대신하지 못합니다.
치료는 흔히 단계로 설명됩니다. 먼저 안전과 넘쳐 오르는 것을 조절하는 능력, 다음으로 외상 기억에 대한 작업, 마지막으로 관계와 일에 다시 투자하는 일입니다. 모든 사람에게 사전 안정화가 반드시 필요한지에 대해서도 치료팀들 사이에 논쟁이 있습니다.
트라우마 중심 심리치료가 여러 가지 사용됩니다. 분명하게 말해 둘 점이 하나 있습니다. 많은 사람을 문 앞에서 멈춰 세우는 대목이기 때문입니다. 트라우마를 상세히 이야기하는 것은 반드시 거쳐야 할 전제가 아닙니다. 그 작업을 하게 되더라도 서로 합의한 속도로 진행됩니다. 약물이 제안되는 경우, 그 목표는 수면이나 불안 같은 동반 증상이지 장애 자체가 아닙니다.
개인의 경과를 진단에서 읽어 낼 수는 없습니다. 이러한 어려움은 지원에 반응하지만, 그렇다고 예측 가능한 일정표를 따르지는 않습니다. 자살 생각이 나타난다면 지체 없이 전문적인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 그리고 연애
한 관계를 시험대에 올리는 것은 거의 언제나 과거에 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훨씬 평범한 것들입니다. 잘 지나간 저녁 뒤의 갑작스러운 철수, 목소리 톤에 대한 지나친 반응, 짚어 낼 이유 없이 올라오는 불신, 가장 나쁜 순간에 찾아오는 거리에 대한 욕구.
파트너 쪽에서 가장 도움이 되는 것은 한 단어로 모입니다. 예측 가능성입니다. 계획이 바뀌면 미리 알리기. 다툰 뒤 사라지는 대신 돌아오기. 침묵이 풀어야 할 수수께끼가 되도록 두지 않기. 이런 행동은 분석하려는 시도보다 낫습니다. 없었던 것에 응답하기 때문입니다.
철수를 무관심과 구별하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앞의 것은 파트너를 겨냥하는 경우가 드물고, 파도가 지나간 뒤 그것을 차분히 말하는 편이 그 파도가 다시 오지 말라고 요구하는 것보다 낫습니다. 파트너는 곁에서 함께할 수 있지만 치료 그 자체가 될 수는 없습니다. 즉석 치료자 역할은 두 사람 모두를 상하게 합니다.
언제 이야기를 꺼낼지에 대해서는 규칙이 없습니다. 많은 사람은 사실보다 영향에 대해 말하는 편을 택합니다. 무엇이 반응을 촉발할 수 있는지, 그 순간 무엇이 도움이 되는지, 무엇이 도움이 되지 않는지. 이야기 자체는 그 사람과 그 사람의 치료에 속합니다. 진단명은 사랑하는 능력도, 오래 함께 버티는 능력도 예측하지 않습니다.